미국 상식

미국의 장관은 왜 'secretary'(비서)라고 부를까?

미국 사는 미추홀 2011. 9. 25. 00:29

미국의 장관은 왜 'secretary'(비서)라고 부를까?

2011-09-24 12:36 (한국시간)
백악관에서 회동하는 '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왼쪽)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미국에서 '세크레터리(secretary)'는 비서와 장관의 두가지 뜻으로 쓰인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비서와 장관을 한묶음으로 취급한다. 같은 언어권인 영국에서도 장관은 '미니스터(minister)'다.

미국은 왜 장관을 '세크레터리'라고 했을까. 헌법에는 장관이나 내각, 곧 국무회의 규정이 없다. 대통령은 업무수행에 있어 행정부처 '고위직(principal officer)'의 의견을 서면이나 구두로 요구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그 '고위직'이 바로 장관인 셈이다. 

아직 국가의 틀을 잡지 못한 때여서 장관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판단이 서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다.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워싱턴은 '고위직'을 네 명 뒀다. 국무와 재무·전쟁(지금의 국방부) 그리고 법무다. 식구가 매우 단촐해 워싱턴은 개인 서재에서 회의를 주재했다. 사람들은 그 방을 '캐비넷'이라 불렀다. 골방 또는 작은 접견실이란 뜻이다. 이후 '캐비넷'이 내각이란 의미로 쓰이게 됐다.
워싱턴이 임명한 '고위직'은 모두 최측근들이어서 대통령의 말씀에 고분고분 따랐다. 개인 비서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장관이 '세크레터리'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장관의 영문표기가 '세크레터리'인 나라는 미국 말고는 없다. 비서 취급 당하기가 싫어서일 것이다.

'세크레터리'는 라틴말이 어원으로 시크릿(secret), 즉 비밀이란 뜻이다. 주인의 재물상태나 은밀한 부분을 두루 꿰뚫고 있는 인물이 곧 비서다. 국가기밀을 다루는 '고위직'이 워싱턴에게는 '세크레터리'로 비춰졌던 것 같다.

요즘 장관 못지 않은 비서가 온통 화제다. '데비 보사네크'란 여성으로 인터넷 검색순위에서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나이는 50대 중반,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살고 있다. '투자의 달인'으로 꼽히는 워렌 버핏의 '세크레터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안을 발표하면서 버핏의 비서를 거론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대통령은 "버핏의 비서에게 주인보다 더 많은 소득세율이 적용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부자 증세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처럼 오바마가 '부자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버핏의 비서가 중산층의 상징으로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보사네크와 관련해선 밝혀진 게 거의 없다. 버핏의 비서로 일한 지 20년이 넘는다는 그는 예의 바르고 유능한 버핏의 '문지기'로만 알려져 있다. 

언론에선 보사네크가 뉴욕 맨해튼에서 근무하면 장관 대우(연봉 19만9700달러)를 받겠지만 거주지가 시골이어서 5만~6만 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어쨌거나 오바마의 부자 때리기로 그동안 아메리칸 드림의 롤모델이었던 부자들이 졸지에 매도되는 느낌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경제위기를 수습하지 못해 재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오바마가 다급한 나머지 버핏의 비서를 끌어들여 부자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대중의 인기영합을 노리는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다.

'분노의 포도'를 쓴 존 스타인벡은 대공황 시절 이주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미국에선 가난한 사람들조차 자신들을 (부자들에게) 착취당하는 계층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만 일시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백만장자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어서 경기가 회복돼 비서도 장관급 보수를 받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